'The illusion on the desert'  Oil on linen  227.3x181.8cm.jpg

BYUNG-KWAN KIM  김병관

What I would like to express through my work is very simple.

I am trying to bring out strangeness from familiarity (visual habit).

Everything there is out there in this world, more or less, provides familiar vision.

This familiar vision can be replaced as habit. This habitual vision which every object gives us and creates comfort. However it shuts down all the other possibilities.

The habitual vision or visual habit makes us go by the routine ways. It stops us from having adventure and checking out the wonders out there.

My work is trying to destroy, tear up, and reconstruct this habitual vision so that our vision can be expended to other images.

I have strong faith in my work that my personal behaviour may lead us 

“Strangeness within habitual vision off from the track."

 

아이콘은 그것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장소 등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이 기호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수많은 의미와 얽혀 있으며, 물론 그 의미는 시간과 공간의 축에 따라 손실, 분실되며 아니면 전혀 다른 의미로 재해석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시대의 기호가 형상을 가질 때 우리는 그것을 아이콘이라 부른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 다른 시간, 장소에 소환되었을 때, 그것이 가지고 있던 이유들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의미로 오로지 형상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의미는 부재하고 그저 추출되어진 형상으로서의 화석, 그러나 여전히 감각적인 이 외피들은 현대미술에서 무엇인가?

만일 화가가 이 아이콘을 마주 대했을 때 그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아이콘 형성의 필연적인 조건들, 즉 목적, 소명 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전혀 다른 무엇이 되어버린 형상만을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엉뚱한 곳에 착륙한 이 아이콘을 재현하는 행위는 당연히 서성거릴 수 밖에 없다.

이 재현행위는 단지 표면, 서포터 로서만 작용하는 아이콘 위에서 좌표를 잃고 헤매이며, 때로 히스테리컬한 스트로크는 산만함을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궤적은 최종적으로 그것이 의지했던 아이콘의 형상을 이룬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도출된 닮음은 다른 의미로서의 미끄러진 유사성이다.

이렇게 드러난 두번째 재현은 그려진 대상에서 비껴나아가며 형상을 이루게 되며, 그토록 화가들을 괴롭히는 문제, 즉 '회화의 무목적성'으로 다가가는 방법으로서의 다른 그리기이다.

회화라는 게임을 통한 길 잃기 

배우, 또는 유명 정치인들의 연출된 사진들을 소재로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들이 매우 '단단한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파파라치 가 찍은 사진이 아닌 이상, 얼마나 많은 세팅이 필요한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편집증과 같은 라이팅, 미장센 등은 둘째 치고, 그들의 머리털 하나 대중들을 향해 연출된다. 따라서 이런 현장에서 우연의 개입은 그야말로 사고(accident) 이다. 
이런 이미지가 ‘거짓이다 참이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내게 관심거리가 아니며, 단지 내 관심사는 ‘습득한 이미지가 얼마만큼 훌륭히 단단한가?’ 이다.
그것이 단단할수록 회화적인 방법으로 공격하고 변주시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유명인을 변주시켜 그린다는 행위가 어떠한 '폭로'와 같은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리는 부분과는 무관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회화 이외에는 회화에서 할 말이 없다.
이미지를 풀어주고 부여잡고 또다시 풀어주고 하는 그리기 방법에서, 이미지를 잡는다는 것. 구축하는 행위는 예를 들자면 초점, 타격지점(aim)을 설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제법 의도적으로 어긋난 것이어서 원래 이미지에서 놓쳐버리거나 흘리는 부분이 많다. 
마치 꿈속에서 그가 누군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얼굴에 초점을 두려는 힘들고도 덧없는 행위와 닮아있다. 
어찌된 일인지 내게는 그러한 경험이 매우 흥분되고 짜릿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매혹적인 무기력함을 의도하는 것이 내 작업의 시도이자 끝이다.
내가 참조하여 그리는 단단한 이미지의 이목구비를 의도적으로 헛스윙하며 그릴 때, 가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잠시라도 긴장을 풀게 되면 영락없이 사진의 분위기처럼 그리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습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즐기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기 방법은 부정확한 내 손에 대한 더없이 좋은 변명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유사성의 의무감에서 벗어나서 함부로 놀 수 있는 권리의 획득이다.) 
이렇게 어긋남이 허락된 aim을 다시 설정하다가 또다시 풀어지고 하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일종의 선물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뜻하지 않은 이미지가 잡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생경한 이미지는 적어도 습관에 구애 받지 않은 그런 종류의 것이며, 다른 게임에선 얻을 수 없는, 어디까지나 그리기의 게임에 종속된 낯섦이다. 
이 생경한 것은 무엇인가? 뭔가 흥분되고 즐거운 것. 내가 디자인 하지 않았던 어긋남. 여기서 뭔가 가능성을 느끼는데, 참조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그 무엇의 형성이다. 
결국 그려진 그림은 참조했던 이미지의 목적성이 점차 배제된 다른 것이 되며 그렇다고 새로운 목적이 주어지지 않은, 단지 어떤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그림이 된다.
무엇을 위한 가능성? 그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회화적인 서술로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이미지의 가능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단단한 이미지 따위를 참조하여 그리기를 시작하는가? 
왜 갇힌 곳에서 시작 하는가 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map)이지 땅이 아니다. 
이 개념은 탈옥이란 것은 감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과 같다.
의도적으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map을 버리는 것이며, (참조한 이미지가 단단할수록 어긋남, 비켜가기의 쾌감은 증가한다.) ‘기존의 지도에서 다른 방향으로 자신만이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라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당분간 없으며,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관능의 깊은 표면    

김웅기 평론가 
“금강”의 시인 신동엽은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지만, 불행히도 김병관은 껍데기만 그린다. 껍질을 제거한 알맹이조차도 다시 껍데기로 그려버린다. 그림의 물질적 표면은 매끈하지만, 시각적으로는 끈적끈적하고 울퉁불퉁하다. 대중 문화 아이콘의 속살이 여물지않은 딱치처럼 겉으로 드러난 듯하다. 껍데기를 벗긴 알맹이 표면을 능숙한 붓질과 섬세한 터치로 겉이지만 속처럼 보이도록 그렸기 때문이다.   미키마우스를 그리든 오드리 햅번이나 라퀠 웰치를 그리든 구체적 부위는  실루엣은 유지하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구체적 부위는 어김없이 뭉게지거나 왜곡된다. 게다가 그가 그린 아이콘들은 분위기랄까 기운 혹은 감각의 더듬이 같은 것을 난잡하게 흘리거나 내뿜고 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눈 앞에 있기는 하나 딱히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나 홀로그램처럼 보이기도 하다. 노이즈가 생긴 아날로그 티브이 속이나 버그가 난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튀어나온 가상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여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글어지고 훼손되어도 여전히 아이콘은 아이콘으로서 불멸의 존재감을 내뿜기야 하지만, 웬지 텅비어 있는 형태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목소리가 육체에서 이탈되고, 디지탈로 복제된 이미지가 편재하는 시대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이미지야말로 이 시대정신(zeitgeist)의 현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체로부터 이탈하여 디지탈로 끝없이 복제되고, 그 복제가 끝없이 돌아다니는 시대에서 작가가 제 아무리 개입을 하여 그 무한증식의 고리를 끊어내어도 복제 이미지는 적당히 변형, 증식되어 흘러다닌다. “끝이 없는 것을 아는 한없이 복잡한 표면의 놀이(Mark Taylor)”인 것이다. 도리어 그 개입의 결과는 역설적으로 불변과 불멸의 신화=자연으로 남게된다. 감추어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이미지의 의미만이 변형되어 영속하는 것이다. 기호 결합이 인과관계처럼 파악되어 우연에 의한 내포적인 의미가 외연적 의미로 드러나는 것이다 김병관도 워홀처럼 대중 숭배의 대상인 아이콘을 작품의 소재로 차용하지만, 그 형식을 손을 사용해서 조작해서 채운다.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을 통해서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행위는 사물을 직접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의미가 부여되어,  보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킨다. 현실 자체가 화면을 통해 보는 이미지와 점점 더 닮아가고, 급기야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곧 이미지와 분리되기 힘든 경험을 하게되고, 자신의 존재를 자기가 그린 이미지를 통해서만 현실적으로 점차 느끼는 것이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화면을 통해 지각된 이미지가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재구성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는 지각적 과정이 수반된 결과로 인한 것이다. 즉 화면으로 지각된 이미지가 신체를 통해서 변형되고 재현되는 그 행위 자체가 미적인 과정의 정신적 과정이나 그 생산이 되는 것이다.  가상이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라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를 넘어서서 그 리얼리티 자체가 오히려 새로운 가상이 되어서 새로운 익숙함을 창출시키는 것이다.  김병관이 가상을 가상으로 되돌리면서 만든 작품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이미지에 포섭된 김병관이 새긴 김병관 자신이 주체로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다. 이 주체의 정체성은 김병관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김병관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흡수했던 대중문화 속에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주체의 외부에서 내면에 흡수된 다양한 이미지들이 대상화되어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그것이 다시 어떤식으로는 반복적 방법을 통하여 다시 재대상화되어 페인팅을 매개로 하여 가공하는 과정 속에 예술가가 예술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작품을 보면서 김병관의 유령같은 주체의 출몰과 활약 그리고 그 흔적을 음미할 따름이다. 





 

Awards and residency

2017 NU-E RESIDENCY, Wanju, Korea

2013 SeMA NANJI RESIDENCY Award, Seoul, Korea

2012 Finalist, SIA Media Art Awards

2011 Finalis, New Discourse Fine artist selection

 

Solo Exhibitions

2021 <MIX SIGNAL> DGB GALLERY, Deagu, Korea

2021 <On the Stage> Artertain, Seoul, Korea

2021 <SPECTACLE> Polestarart Gallery, Seoul, Korea

2019 <Second Layer> Gallery Daon, Seoul, Korea

2019 <Black Painting> Salon Artertain, Seoul, Korea

2017 <Hysteria> Salon Artertain, Seoul, Korea

2016 <Empty Girl> PROGR, Bern, Switzerland

2015 <Behind the face> aA design museum, Seoul, Korea

2014 <Experimental Theater> Gallery LA MER, Seoul, Korea

2012 <Drawing for version 0.0> Gallery GAHOEDONG60, Seoul, Korea

2012 <X-report>, Gallery Aura, Seoul, Korea

2011 <Finalist exhibition-New Discourse Fine artist selection> Cyart Gallery, Seoul, Korea

Group Exhibitions

2022 <Beyond the Visible> Lena Gallery, Seoul

2022 <Switch Art Market> Baek Hae-Young Gallery, Seoul

2021 <Male of the Species> Arcadia Contemporary, New York

2021 <Total support 2021> Total Museum, Seoul

2021 <Art collective; On&Off> Lotte Gallery (Main Branch), Seoul

2021 <Your Goodbye> Soma Art Museum, Seoul

2020 <SUPER COLLECTION> Superior Gallery, Seoul

2019 <BEHIND THE SCENES> Lotte Gallery, Seoul

2018 <DEAR MY WEDDING DRESS> Seoul Museum of Art, Seoul

2017 <Can't Take My Eyes Off you> Baek Hae-young Gallery, Seoul

2016 <Counter Work _ Artist Kim vs Artist Joe> Salon Artertain, Seoul

2016 <Insight> Gallery Grimson, Seoul

2016 <‘FRESH! 2016’> Jankossen Contemporary, New York, USA

2016 <ATROCITY EXHIBITION> Galleri A / A Minor, Oslo, Norway

2015 <THE PRESENT> Sinsajang, Seoul

2015 <UTOPIA> Karimacelestin Gallery, Marseille, France

2013 <Nanji Art Show I: Mnemosyne's Private Life> SeMA NANJI EXHIBITION HALL, Seoul

2012 <Welcome to the Crystal Room>, SIA Media Art Awards Winner, Seoul Museum of Art

2012 <Meeting with 6 Finalists for SIA Media Art Awards> CJ E&M Center

 

Art Fairs

2022 ARCADIA CONTEMPORARY at LA Art Show 2022

2021 ARCADIA CONTEMPORARY at LA Art Show 2021

2017 J+ at SCOPE New York 2017, J+